‘달러 패권 도전’ 중국, 위안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추진
위안화 국제화 전략
중국이 위안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은 단순한 디지털 금융 실험이 아니다. 사실상 달러 패권에 맞서 위안화 국제화를 촉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중 99%가 미국 달러에 연동돼 있다는 점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디지털 자산조차 달러 중심 구조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입장에서는 이를 방치할 경우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이 더 축소될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가 그리는 그림은 분명하다. 무역과 투자 결제에서 위안화 사용을 자연스럽게 늘려, 국제 금융의 결제 네트워크에서 ‘달러 일극 체제’를 흔드는 것이다. 특히 일대일로 참여국가들이나 아시아 신흥시장에서 위안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다면, 기존 SWIFT 결제망 의존도를 줄이고 달러 수요를 일부 대체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위안화가 국제 무역 결제와 외환보유고에서 ‘준비통화’로 자리 잡는 것이 목표다. 이는 단순히 화폐 문제를 넘어 국가 안보와도 연결된다. 달러 패권이 유지되는 한, 미국의 제재나 금융정책 변화가 곧바로 중국 경제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안화 국제화 전략은 경제적 필요뿐 아니라 정치·외교적 필요에서도 출발한다. 이번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그러한 전략을 디지털 금융 환경에 맞게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책에 대한 대응
중국이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미국의 최근 정책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지니어스 법(Genius Act)’에 서명하면서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금융에 편입할 수 있는 규제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달러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자산이 세계 금융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만약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무역과 투자에서 사실상의 기준이 된다면, 위안화 국제화 전략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사실 중국은 2021년부터 가상화폐 거래와 채굴을 전면 금지하며 금융 안정성을 최우선에 두어 왔다. 당시에는 투기적 거래와 자본 유출 우려가 컸고, 디지털 자산의 위험 요인이 금융 시스템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이 제도화를 주도하고, 유럽과 일본 등 주요국도 스테이블코인 규제 틀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뒤처진다면 위안화 국제화 전략 자체가 실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디지털 달러 확산에 적극 나서면서 중국의 긴장감은 더 커졌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CBDC)를 통해 이미 중앙은행 주도의 전자화폐 실험을 진행해왔지만, 글로벌 차원에서 통용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거론되는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CBDC와 달리 시장 친화적 접근을 통해 국제 금융에 직접 뛰어드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즉, 미국의 속도전에 맞서 중국이 ‘정책 전환’을 공식화한 셈이다.
글로벌 금융질서 파급효과
중국이 실제로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을 승인한다면 글로벌 금융 질서에는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우선 아시아 및 신흥국에서 달러 대신 위안화 결제가 확대될 수 있다. 중국과 교역 규모가 큰 국가들이 무역 결제에서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을 채택할 경우, 달러 수요는 점차 줄어들 수 있다. 이는 곧 달러 패권의 기반을 흔드는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특히 국제 제재 회피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서방 국가들의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 만약 중국이 러시아, 이란 등 미국 제재를 받는 국가들과 위안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거래를 확대한다면, 기존 달러 중심 금융망을 우회하는 새로운 국제 결제 네트워크가 생겨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지정학적 긴장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위안화의 환율 정책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외환 시장에서 위안화의 자유로운 환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글로벌 신뢰를 얻는 데 걸림돌이다. 또 국제적으로 통용 가능한 블록체인 인프라와 보안 체계 구축, 자금세탁방지(AML) 규정 정비 등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의 규제 압박 가능성은 큰 리스크다.
결국 이번 중국의 시도는 금융 혁신을 넘어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전략적 카드’로 봐야 한다. 만약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글로벌 금융 질서는 다극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갈등과 충돌의 위험도 높아질 것이다. 달러 중심 체제를 대체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금융 불안을 낳을지는 앞으로 중국의 정책 실행력과 국제 협력 여부에 달려 있다.
용어설명
-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달러, 유로, 금 등 실물 자산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디지털 화폐. 주로 결제와 송금에 활용된다.
- 위안화 국제화: 국제 무역, 투자, 외환보유고 등에서 위안화 사용을 확대해 달러 중심 체제를 완화하려는 중국의 전략.
-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전자화폐.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국가가 100% 통제한다.
- BIS(국제결제은행): 중앙은행 간 협력과 금융 안정 강화를 목표로 하는 국제기구.
- SWIFT: 전 세계 은행 간 결제를 지원하는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 현재 달러 중심 구조가 강하다.
- 지니어스 법(Genius Act):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금융에 편입하기 위해 마련한 규제 법안.